합격수기
예비전력 커뮤니티
정말 바닥의 심정으로 지치고 힘이 들 때 제 손을 잡아 주신 상무학원 대표님께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이번 전반기 제70회 예비전력관리업무담당자 해군 지역으로 지원하여 합격한 퇴역 해병 소령 이찬우입니다.
우선 제70회 합격하신 분께는 축하의 말씀을 전하며 아울러 아쉽게 비선 되신 분께는 더불어 위로와 격려의 말씀을
전해 드립니다.
비선 되신 이유는 여러 가지 사유가 있을 것으로 사료가 됩니다.
(모든 것이 한 끗 차이인 것 같습니다.)
비록 지금 당장은 힘들고 지치고 속상하고 자존심 상하고 마음 아프고 눈치도 보일 것이지만
이 또한 먼 미리에 대한 밑거름이자 투자라는 긍정적인 마음으로 극복하여 이겨 내시면 머지 아니한
미래에 원하는 결과가 자기 앞에 멋스럽게 와 있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수기라는 거창한 말 보다는 퇴역 후
제가 2년이라는 시간 동안 힘들게 겪으면서 헤쳐 나갔었던 그간의 인생 글이라고 표현하는 편이 어울릴 것 같습니다.
글을 작성 전
이곳 상무학원과 존경하는 대표님께 마음을 담아 감사한 마음 전하고자 합니다!
최종결과 공고가 있고 며칠 내 후기를 남길려고 했었으나 모친께서 직장암 수술 등 소속부대의 근무와 보호자 역할 등
인해 5월을 넘기고 6월 첫날에서야 시간을 내어 이렇게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저는 2020년 3월말 부 현 계급에서 퇴역 후 대출 등 일부를 갚고
1년 이내 합격이라는 목표를 설정하고 시험을 준비했었으나 그 당시 시골 어르신들께서 병환이 찾아 오는 상황에서
가족과 떨어져 지내면서 시골 밭일과 환자 케어 및 공부 등을 병행하다 보니 제가 설정한 방향과 시간이 꼬이면서
목표한 시간 보다 2배의 시간이 흘러 지나 2년이라는 시간이 걸려 버렸습니다.
(이런 저의 환경에 속상하고 화나고 도움은 주지 못하더라도 방해가 되어 걸림돌이 되는 어르신들을 원망하였는데
사실 실패하는 시간이 길수록 그런 마음은 더 커져만 갔었습니다)
2021년 68회 전반기 본고사를 보기 좋게 말아 먹고 깊은 고뇌에 빠져 있을 때 후배 편으로 상무학원을 알게 되었고
고심고심 끝에 전화로는 통화 나눌 자신이 없어서 전해 받은 번호로 현재 처한 환경과 심정 등을 담은 내용 등을
대표님께 카톡으로 드렸었습니다.
글을 보낸 후 마음 졸이며 기다리고 있는데 얼마 지나서 대표님으로부터 답장이 왔는데 “돈 않받고 무료로 카페 열어 드릴테니 공부하고 합격해서 국밥 한 그릇 사주시면 됩니다!” 라는 내용이였습니다.
믿기지도 아니하고 의아해서 내가 잘 못 내용을 보고 이해한 것은 아닌가 하고 몇 번을 반복해서 확인한 다음 다시 확인하고자 답장을 했었는데 잘 못 보낸 것이 아님을 알게 되었고 그 당시 심정은 물에 빠진 사람에게 구명줄을 던져 주신 것과 같은 감사한 마음밖에 들지 않았던 기억이 납니다!
거리 및 환경 등 인해
한 번도 만나 뵙고 직접 대면으로 얘기 나눈 적은 없었기에 처음에는 낯설고 어색했었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글 대 글로써 소통을 하게 되었고 공감을 하면서 인연임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주어지는 10개월의 직보 기간에
아무것도 모르는 무지한 상태에서 타 학원을 소개 받았었고 등록을 하고 시작을 하게 되었는데
상무학원을 알게 된 후 한달 간 진행한 것과 1년을 넘게 투자한 기존의 학원을 서로 비교를 해볼 때
가르치는 방법과 방향 그리고 스킬 등 너무나 분명하고 많은 차이가 남을 알게 되었습니다.
68회 전반기때에는 공부량이나 모의고사 미 접한 상태로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이 미흡한 것도 있었고
OMR 답안지에 마킹을 절반 밖에 못하고 나오는 어이없는 실수를 범하고 허무하게 시험장을 나왔었고
69회 후반기를 다시 준비하는 것으로 방향을 잡고 싶었으나 가장으로서 생계가 제한이 되는 모습에서
포기하고 일을 찾아 가야 하나 아니면 병행해야 하나 그것도 아니면 공부만 해도 되나 하는 귀로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정말 바닥을 기는 심정으로 지치고 힘들 때 방향을 제시해 주고 경제적으로 제한이 되는 상황이였으나
무료로 동영상 시청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해주셨던 너무나 감사하고 고마우신 상무학원 대표님이십니다.
작년 후반기인 69회 본고사 대비 2개월 전
후배편으로 소개 받은 상무학원였는데 법령에 대한 각 영상들을 하나하나 대충이 아닌 여러번 반복 시청하며 시간이
다소 소요가 되더라도 이해가 되지 아니하면 같은 구간의 내용을 수십번 수백번 반복 청취하고 혼자 중얼중얼 거리면서 내 것으로 만들어야 마음이 편했었습니다.
학원이 가까이 있었으면 매일 찾아가서 수업도 직접 참여해서 듣고 궁금한 것에 대한 질문도 했었으면 너무 좋았겠으나 제한이 되는 상황이기에 그 당시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온라인의 특성 등을 잘 살려서 남은 시간 대비 제가 잠을 줄여 가면서 헤치워야 되는 분량에 대해서는 끝내고 잠을 청한다! 였습니다.
시골 밭일과 어르신들 병원 진료 및 케어, 그리고 공부를 병행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였습니다.
하루 24시간이 부족할 정도에서 어느 하나도 아니할 수 없는 것이였고 모든 것을 대충 소홀히 할 수 없는 상태에서
저는 남들보다 제한되고 어려운 환경이지만 모두 껴안고 달리자 라고 결심했었는데, 주변에서는 이런 중요한 시기에
올인해도 부족한 상황에서 저를 비난하는 사람도 사실 있었습니다.
이런 열정과 팩트를 담은 상무학원과 대표님을 남들보다 한참 늦게 알게 된 것에 후회가 엄청 컸었으며
이곳을 통해 제때 시작해서 수준 달성이 되었거나 되어 가는 사람들을 생각해보니 그 사람들이 너무나 부러운
마음이였고 한편으로는 초조 불안이 엄습해 왔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간 느껴 보지도 접하지 못하였던 제 머릿속에 궁금한 상태로 계속 따라 남아 있었던 많은 궁금증들이 상무학원을
통해 여름날 메마른 대지에 시원하게 내리는 소낙비처럼 모두 해소가 되었습니다.
어디 문의할 때도 마땅히 없거니와 공부 시작한지 1년이 넘은 시점에서 기본적인 내용에 대해 물어 본다는게 자존심도 상하고 또 저를 어찌 평가할까 하는 그런 생각에 이 또한 쉽지만도 아니했었습니다.
하루 24시간 중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잠을 줄이는 것 밖에 없었고 주간에 힘든 바깥일 등을 하고 시골집에 들어와
책상 앞에 앉으면 피곤과 지침 등 공부와 씨름 한다는게 말처럼 쉽지 만은 아니했었으나
머지 아니해서 좋은 날이 내게도 올 것이다 라는 희망을 품고 의지가 꺾이지 않게 마인드 컨드롤 하며
매일 2시간씩 자면서 그날 내가 끝내고자 했었던 목표량을 위해 매진했었고 영상 시청 간 강의 중 구분해야 되는 것
헷갈리는 것에 대해 따로 정리해서 제공해 주는 것을 하나도 빼먹지 않고 모두 캡쳐 후 출력하여 각 법령 교재 내
해당되는 내용 옆에 날개를 달아 붙여서 비교 구분하고 숙지 학습했습니다.
대표님 출신이 아래 지역의 특성 상 사용하는 깡 있으신 말투와 중간 곳곳마다 등장하는 정신 빠짝 차리지 아니하면
않된다는 강렬하고 엄하기도 하지만 들으면 기분이 상할 수 있는 그런 내용들이 오히려 제게는 약이 되었고 의지가
잠시 꺾이는 시기에 엄청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가야 되는 목적지는 분명히 있었지만
컴컴한 먼 바다를 아무것도 준비되지 아니한 상태에서 가야되는 방향을 잃은 제게 방향성을 제시해주고 먼 항해를 함에 역풍이 아닌 순풍을 선사해 주심에 외로이 힘들게 갈 수도 있었던 제게 순탄하게 쉽게 잘 갈 수 있도록 지도 역할을
해주신 것에 이 자리를 빌려서 고마움과 감사한 마음을 전합니다^^
이런 긍정적인 영향에 힘입어 그간 제가 방법과 방향을 모르는 상태에서 무지한 지난 날의 공부한 시간들을 과감히 청산하고 늦은 감 있지만 상무학원을 접한 후 본고사 대비 남은 기간 2개월 열정을 받쳐 정성을 쏟은 결과 필기시험 통과하여 신검과 최종결과까지 가게 되었으나 일찍부터 올인한 경쟁 대상자들에 비해 부족한 저의 수준과 기량 등 밀리는 현실의 결과를 접하였습니다.
비록 그 당시
미끄러지는 쓴 고배를 마시게 되었지만 짧고 치열하게 해서 승부수를 걸 수 있었음에 아쉬운 마음 달래며 빨리 털어
버리고 재도약하는 것으로 재설정 후 한번 더 달리는 것으로 마음을 정하였습니다만
한 가정을 책임지고 부양해야 될 가장으로서 체면은 둘째 치더라도 매달 허덕이고 불안한 경제적 현실에서 발이 묶이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1년 목표 설정을 하고 비축해 놓은 생활 자금은 거의 바닥이 된 상태에서 다행스럽게도 소령 18년 근무와 그전에 병사로 근무한 2년 2개월의 의무복무 기간을 합산 후 적용되어 충족되는 연금 수혜자로 인해
제때 간부로 시작한 사람과 정상 진급한 소령들에 비해 매달 받는 연금의 금액은 비교 아니되게 작았지만 그래도 없는 것 보다는 나았기에 저희 가족들에게는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이 됩니다.
저는 2020년 3월말 군인사법 연령정년 적용되어 현 계급인 소령을 퇴역을 하여 군문을 나오며 그 누구보다 자랑이였던 해병대 군복을 벗었습니다.
저는 1990년 중반 20대 초반에 해병대 병으로 자원입대하여 당시 26개월 기간 군 복무를 이상없이 실시 후 전역을
하였기에 다시 군에 들어가지 아니해도 되었으나
국가와 국민들을 위해 다시 한번 더 군복을 입고 일하고 싶다는 마음에 이끌려 안정된 경찰간부호보생 경위 임용을
포기하고
늦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28세에 마지막 기회에 합격하여 동기생들보다 나이가 4~5년 많은 상태에서 모군인 해병대로 다시 재입대하여고 군 간부 장교로 근무를 하게 되었습니다.
출신에 무관하게 늦은 만큼 열심히 노력하고 애쓰면 인정을 받을 것이다!
동기들 보다 나이 많은 것
선배들 보다 나이 많은 것 모든 것을 내려 놓고 늦게 다시 찾은 나였기에 아니 꼬아도 참으면 될 것이다!
전투병과 아닌 비전투병과 출신이라는 것!
해병대 병으로 전역하고 다시 장교로 들어 왔다는 것!
군 조직 특성 상 각 계급별 제한되는 연령 등 극복해야 될 넘어야 될 산들이 많이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나만 인내하고 극복하면 될 것이다! 라는 마음과 달리
조직은 그런 것도 좋지 아니한 시선으로 바라 보았고 대하는 모습들을 접하고 속상하고 마음 다치기도 했었지만 내가 좋아서 다시 찾은 곳이기에 충성하고 헌신하면 알아 줄 것이라는 기대와 희망이 품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그게 나의 허망된 꿈이구나 하는 것을 뼈져리게 느끼는 순간순간이 많았음에....
“노력해도 않되는 것이 있구나!” 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많은 후회가 밀려 들었으나 제가 좋아했었던 그런 조직이였기에 감래하며 또 감래하며....
이빨 꽉 깨물고 지냈다기 보다는 중간에 포기하면 나이 먹고 아니가도 되는 군대 늦게 다시 올 때 말리던 가족들에게
장남으로서 아들로서 쪽발리기에 버티어 내었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가족이 생기도 가장이 되면서는 그 마음 더 간절하고 컸었던 것으로 회상합니다.
당시 3가지 후회를 했었던 것이
군에 다시 가지도 아니해도 되었는데 국가와 국민들을 위해 일을 하고 싶어서 마음으로 군을 품었던 것
타 군이 아닌 모군인 해병대로 다시 재지원한 것
그리고 전투병과가 아닌 비전투병과로 지원한 것....
남들에 비해 많이 늦은 만큼 정말 치열하게 열심히 살았던 지난 시간들어였던 것 같습니다.
힘든 지난 과거의 시간들이였지만
자랑이자 좋아 했었던 해병대에서 2번째 근무하며 해병대 군번 2개를 갖게 된 것
제4회 국방부 위국헌신상 헌신분야 선정 김관진 국방부장관께 직접 표창 수여 받았다는 것
(포상금으로 일천만원을 받았으나 전액 사회로 기부하였다는 것도 나름 큰 의미)
군 생활 간 정부 장관급 표창 총 5회 수상한 것
박근혜 정부때 대통령표창 수상자 결정이 되었으나 반납한 것
박근혜 정부때 복지부 국민나눔대상자 선정 초청 청와대 오찬 행사 참석하여 군을 빛낸 것
국민나눔대상 수상자 선정되어 서울 KBS 방송국 생방송 시상식 참석하여 국민의 군대임을 공중파 통해 전군으로
전파한 것
건군 55주년 국군의 날 행사 준비를 위해 중위 시절에 2개월 넘게 제병지휘부 소속으로 참가 행사 준비한 것
모범 장교 선정되어 각 종 대표 행사 및 국군의 날 행사에 수차례 이상 참가한 것
대한적십자사 생명 나눔 사랑의 정기 헌혈을 군 생활 간 200회 이상 실천한 것
해병 항공단 창설 간 헬기조종사 선발 합격되어 육군 항공학교에서 조종사 양성교육 받은 것
사랑하는 집사람을 만나 어여쁜 딸아이 2명의 아빠가 되었던 것
당시 사령부 병과에서 저를 대상 진급때나 근무평정때 마다 장난질을 한 것을 잘 알고 있는 상태에서
소령 진급 되지 아니해서 대위로 전역하는 해 관사 정리하고 나오고 사회 국가직 9급 경채 지원하여 최종합격과 동시에 얼마 후 비전투병과로 소령 5차 진급해서 어떤 것으로 선택해서 가는 것이 과연 맞는 것인가 고심고심 끝에 경채 임용 포기하고 소령으로 남은 연령 대비 3년 더 근무하고 퇴역하는 것으로 결정한 것(소령 5차 진급 당시 43세로 중령으로 진급 기회는 없는 상태에서 연금만 적용되는 모습)
남들 편히 쉴 때 국가 기술자격 공부해서 자동차정비기사 등 40여개 이상 취득하여 보유한 것
제 9회 국민추천대상에서 대통령 표창을 세종 정부 컨벤션센터에서 국무총리님 주관 수상했다는 것
국가와 국민들을 위해 어려운 사회와 이웃의 약자들을 봉사하며 군인 신분으로 헌신한 지난 시간 등
69회 본고사에서 쓴 고배를 마신 후 70회 본고사를 다시 준비하면서
경제적 어려움 등 해결을 위해 2021년 후반기 육군 경채 지원에 응시한 것에 대한 서류 전형 합격 후 면접을 가게
되었고 6:1이라는 경쟁률 속에 20대 후반부터 30대 중반의 경쟁자들에 비해
저는 40대 중반을 넘어 후반으로 가는 불리한 나이 조건이였지만 면접 간 최선의 노력을 다한 결과 최종합격을 하여
올해 3. 1. 부
육군 2작전사 예하 대전 소재 공병단에서 8급 로더 중장비 운용담당으로 근무를 시작하였습니다.
당시 면접관들이 타군 영관장교 출신이 육군 8급 경채 면접에 와서 앉아 있으니 나름 신기해서 질문할 내용도 많았던 것 같습니다.
국방부 위국헌신상을 수상했는 것에 제게 관심이 집중되었고 관련 자격증 최다 취득하여 보유 등
사회 봉사활동 기여 등 많은 표창을 갖고 있었던 것도 긍정적으로 평가를 받는데 한 몫을 한 것으로 평가를 해봅니다.
제가 당시 면접관님들께 나이 많고 타군임에 시작도 전부터 색안경을 끼고 보지 말았으면 하는 것과
얼마나 그 사람이 간절한지 그리고 어떤 사람을 선택했을 때 조직에 기여할 수 있는지에 대해 구분 판단해 주었으면
희망합니다! 라고 먼저 제가 시작 전과 후에 간절한 마음을 담은 말을 하였습니다.
다른 대상자 10분 내 비해 저는 면접을 30분 가까이 진행했었는데 느낌이 좋았었던 기억이 납니다.
다시 포항 가족과 대구 시골 본가 어르신들 뒤로 하고서 떨어져 나와 대전 거주중인 군대 후배 숙소에서 지내면서 일과 공부를 병행하였습니다.
간단하게 짐을 꾸려 낡은 제 차량에 옷 몇가지 등을 챙겨 실고 임용 당일 새벽에 대전으로 출발할 때 그 심정과 마음은 무겁기만 했었습니다.
근무지가 자운대 내 위치하고 있는데 건너편에는 본고사 시험장인 교육사 및 육대 건물이 어렴풋이 보이는 것이 어쩌면 마음 편한 모습이였습니다.
매일 매일 근무지에 출근할 때 마다 시험장인 육대 건물을 보면서 시험 당일날의 불안감과 긴장감을 조금이 나마 해소할 수 있어서 좋았던 것 같습니다.
이곳으로 올라 오는 새벽에 미리 70회 본고사 시험장으로 미리 간다는 심정으로 왔었습니다.
이곳 근무지에서 그리 오래 머물지는 않을 것이다! 라는 각오로 매일매일 마음을 다잡고 주간에 근무하며 돈 벌고
현역 군인들 퇴근하면 텅빈 사무실에서 익일 새벽까지 남아 지침과 힘듬을 참으면서 시험 준비에 고군분투 전력 투사를 했었습니다.
계절이 어찌 바뀌는지 꽃이 피고 지는지도 모르는 채 마음 편히 누워 쪽잠 자는 것도 사치라고 생각하고 불안하여
잠 한번 편하게 청한 적도 없었습니다!
언젠가 내게도 어둠의 긴 터널을 지나 밝은 바깥 세상으로 나갈 수 있을 것이라는 그날을 손꼽아 기약하고 희망하면서
낯선 환경 속 사람들과 피곤과 지침으로 힘들어도 잊은 채 주경야독 형설지공한 지난 시간들였습니다.
이번 본고사 막바지 기간 중
시골 부친의 치매 증상 악화 그리고 모친의 직장암 수술로 인한 병원 입원 및 수술, 보호자 임무수행 인해 준비 간에
이런저런 우여곡절 등이 많이도 있었습니다만
제한되는 여건 속에서도 굴하지 아니하고 묵묵히 최선의 노력을 경주한 결과 제게도 좋은 결과를 보내준 것 같아 감사한 마음입니다.
지금까지 공석이 많은 육군 지역으로 지원을 하지 아니하고 변함없는 한결같은 마음으로 공석의 크고 작음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아니하고 소신 있게 지원한 결과 하늘이 주신 선물이라고 생각해 봅니다.
공석이 없는 모군인 해군 해병대 지역으로 지원을 하면서도 마음 한편에서는 이게 잘한 선택인가 하는 후회(?)와
불안감도 있었지만 여러 번의 본고사를 거치면서 실패를 거듭하면서도 자신을 믿었습니다!
그간의 몇 번의 실패로 쓴 고배를 마시면서도 희망의 끈을 놓치 아니 했는데 결국에는 밑거름이 되었고 새롭게
시작하는 매 과정에서 변함없는 강인한 담금질이 되었습니다!
목표 설정 1년 대비 1년이 더 초과 되어 2년이라는 시간이 되어 버렸으나 결국 목표를 이루었습니다!
조금 더 일찍 상무학원을 알게 되었더라면 힘든 과정을 줄이고 합격의 영광을 조금 더 빨리 이룰 수 있었을텐데 하는
아쉬운 마음이 듭니다만 그렇게 되었더라면 아마도 자만심이 생겼을 수 있었기에 실패를 맛보고 경험한 사람만이
힘들게 이룬 것에 대해 값진 것에 대한 소중함을 알 것 같습니다!
힘든 그 당시 제게 따스한 도움의 손길을 기꺼이 내어 주신 상무학원과 대표님께 다시 한번 더 감사한 마음을 전하며
학원의 무궁한 발전과 건승 그리고 개인 및 가족 구성원 모두의 건강과 행복을 위해 늘 두손 모아 기도 드리겠습니다^^
상무학원을 선택한 이곳의 사람들은 탁월한 선택이며 머지 아니해서 꼭 합격의 영광이 함께 할 것이라 믿습니다!
저는 5. 31.부
현 근무지에서 면직 퇴직 희망 신청하였으나 상급 부대에서 시간 대비 절차 상 제한이 된다고 하여
6. 4.(토) 면직되는 것으로 결정이 되었으며 6. 3.(금) 아침에 면직 신고 후 가족이 있는 경북 포항으로
3개월 만에 다시 내려 갔다가 6. 7.(화) 오전 충북 괴산 소재 학군교로 3주 간 부임 전 직무교육을 가게 되었습니다.
작년 69회때 최종에서 미끄러지고 학군교 교육 2주 가는 사람들 보면서 가기 싫은데 간다 식의 말을 들었을 때
제가 대신 가주고 싶었던 마음인데 현실은 그러하지 못함에.... 저도 당시 가고 싶은 마음 간절했었는데....
코로나가 완화가 되어 2주에서 원래대로인 3주로 변경이 되었습니다만 이번에는 저도 그 교육에 가게 되었습니다^^
3주의 교육이 수료 되면 저는 해상편으로 제주지역으로 가족과 또 떨어져 지내야 하지만 가장으로서
생계를 다시 책임질 수 있는 것에 감사하고 다행스럽게 생각하며
지천명을 바라 보는 시기에 정년을 감안할 시 길게 남아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기에 그곳에서 적응이 되면 바로 또 다른 것을 준비하면서 매진할 계획입니다.
해병대 병사와 군 장교로서의 군대 입대 2번 그리고 군번 2개 보유
육군 경채 군무원 신분으로 순번 1개 보유
앞으로 임용될 해병대 군무원 신분으로 순번 1개 부여 받을 예정
군으로 군복을 입고 현역 군인으로서는 진급도 하면서 오랜 기간 근무는 못하였습니다만
그래도 한때 자랑이자 자부심이였던 해병대로 다시 들어가서 군에 관련된 근무를 할 수 있는 것에 너무나 큰 감사한
마음입니다!
매년 최소한 1개 이상의 자격증을 취득을 위해 공부하여 정년까지 총 50개를 취득 및 보유하고
정년까지 정기 헌혈을 통해 500회 실천 목표로 매월 2회씩 변함없이 실천 예정이며
자랄 때 미안하게도 아이들과 함께 놀아 준 기억이 거의 없는데 중고등학생들이 된 지금 많이 늦은 감 있지만 가족들과 지금까지 함께 하지 못한 시간들을 갖고 함께 하고 싶으며
이번 모친 수술과 부친의 치매 등을 지켜 보면서 건강을 잃으면 다 잃는 것이다 라는 말이 틀린 것이 아님을 뼈저리기 느끼는 계기가 되었는데
건강은 건강할 때 잘 지키는 것이 중요함을 뼈져리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내일 하루는 대전에서의 마지막 출근이 되는데 오늘 하루 마음 가다듬고 그간의 감사한 마음을 담아서 상무학원과
대표님께 소중한 글을 한자 한자 정성 담아 쓰다 보니 벌써 해가 저물어 버렸습니다.
장문의 감사 글을 작성하면서 지난 그간의 힘든 과정들을 떠올리며 생각하자니
길고 추운 겨울 날씨에 꽁꽁 얼어 있었던 얼음과 쌓여 있던 눈들이 따스한 봄날에 눈 녹듯이 녹아 내림을 느끼면서
상처와 아픔들이 치유가 됨과 그 과정들이 주마등과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갑니다.
마음 편히 밥 한번 먹을 수도 없었고 마음 편히 등을 바닥에 눕혀 보지도 못하였던 지난 날들....
조직을 위해 충성하고 헌신한 것이 전부인데 “토사구팽” 처럼의 모습이 된 자기 자신을 보며
대쪽 같이 살아 온 제가 가족들을 위해서 비위도 맞춰 주고 적당히 아부도 하고 딸랑도 해주면서 하지 못함에 반성
아닌 반성도 해보는 계기도 되었습니다.
사회도 힘든 것을 알지만 군과 비교 했을 시 좋은 점도 분명히 있기에 생계 위해 가장으로서 경제적 힘든 시기들을
겪어 보니
군에 있을 때 좀 내려 놓고 적당히 타협도 하면서 눈치껏 해주었더라면 남아서 군인에게 최고의 영광인 진급도 하고
가장으로서의 모습도 보였을텐데 하는 그런 마음도 들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종합하여 남기고 싶은 말은
상무학원을 선택한 이곳의 모든 준비 진행중인 사람들은 합격으로 갈 수 있는 탁월한 선택을 한 것이며
본인은 학원에서 제시한 방향과 설정을 믿고
그 속에서 본인은 자기 자신이 지침과 힘들 때 마다 대충하고 쉬는 것을 타협하는 일이 없도록 최선의
노력을 경주하여야 하며 법령 마다 비슷하여 헷갈리는 내용들에 대한 것들은 필히 구분하여야 하고
필요한 것들은 곳곳에서 제시를 해주니 그 내용들은 핵심이기에 자기 것으로 만들어야 할 것입니다.
저는 모의고사 없이 원문에 충실하다 보니 문제를 접하면 머리 회전 필요에 따라 남들보다 늦음으로 인해 불리한 조건이였지만 연연해 하지는 아니하였으며 모의고사는 본 시험에서 시간이나 출제 방향 등을
미리 접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기에 여건이나 여유가 된다면 선택하여 필요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인생을 살아 가면서 이렇게 지치고 힘든 시간들은 지금까지 없었으며 치열했었던 기억으로 남습니다!
길게 간다고 해서 잘되고 짧게 간다고 해서 잘 않되고 그런 형태의 시험이 아니기에
가급적이면 짧고 치열하게 목숨을 내 걸고서라도 집중해서 한번에 헤치우는 편이 여러면에서 이익이고
정신적 건강상에도 좋으니 자기 자신과 대충하고 타협해서 넘기는 그런 방법은 별로 도움이 않됩니다!
몇 번의 실패를 저처럼 보았어도 자기 자신을 믿고 끝까지 정신 줄 놓치 아니하고 매진하다 보면
분명하게 밝은 태양이 자기 자신에게도 따스하게 내리 쬐일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상무학원과 함께 하는 이곳의 사람들은 모두 해낼 수 있는 저력 있는 사람들입니다!
몸 건강 잘 챙기면서 날씨와 기타 어려운 환경 등 탓하거나 비관하지 마시고 끝까지 정신줄 챙기시면서 매진하시길
당부합니다!
저 보다 더 바닥의 마음으로 힘들게 나이 먹고 버려지는 사람으로서 낙인 찍히면서 버티고 이겨 내고 진급하고 나오고
병환 있는 환자 돌보며 시골 밭일함에 로타리 치고 고랑 치고 비밀 치고 농약 치고 작업하면서
본시험 준비한 저 보다 더 힘들게 공부하였거나 지금 하거나 앞으로 하는 사람들 중에는 없을 것이라 감히 말해 봅니다!
본 시험에만 올인 할 수 있는 여건과 환경이 된다는 것만으로도 크나 큰 재산이 됩니다!
이곳의 모든 사람들은 해낼 수 있으니 믿고 끝까지 열심히 파이팅 하시길 당부합니다!
상무학원 대표님께는 제가 직접 찾아가서 소주와 국밥을 사드려야 되는데 현재 남은 기간 대비 움직일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제한이 되어 부득이 약속을 이행 못할 것 같습니다....
죄송하지만 추후에 제주도로 기회가 되어 오시게 되면 잘 맞이하도록 하겠으니 이해 부탁드립니다^^
상무학원과 대표님 그리고 이곳의 본고사를 준비하는 모든 학원생님들 여러분들의 앞날에
무궁한 발전과 건승이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긴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퇴역 해병대 소령 이찬우 배상.